[뉴스라운지] 백두산 폭발
유득공은 37세 젊은 나이에 발해고(渤海考)를 썼다. 정조 8년, 1784년의 일이다. 발해고의 가치는 고려가 외면했던 발해사를 한국의 역사로 다시 편입시킨 데 있다. 삼국시대-통일신라-고려로 이어지던 전통적 한국사 서술 방식이 20세기 후반 들어 삼국-남북국시대-고려로 바뀐 것도 발해고의 유업이다. 200년 이상 존속했던 발해는 926년에 멸망했다. 멸망의 원인을 그 무렵 있었던 백두산 대폭발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. 당시 백두산 폭발이 폼페이를 매몰시킨 베수비오 화산보다 100배나 강력했다는 점, 백두산 일대가 발해 5경의 한 가운데였다는 점 등이 이유다. 그러나 백두산 대폭발은 시기가 비슷하긴 했지만 발해 멸망 직후였다는 것이 아직은 정설이다. 최근 백두산이 4~5년 내에 대폭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. 중국 학자들의 조사를 바탕으로 백두산 일대의 지진 활동이 월 240회에 이를 만큼 급증했고, 주변 지형이 융기하고 있으며, 화산가스로 인해 나무가 말라죽고 있는 것 등이 모두 화산폭발의 전조라는 것이다. 화산 폭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자 한국 기상청까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린다. 해발 2744m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이다. 고려가 외면했지만 조선시대 이후 가까스로 지키고 있는 그 곳을 중국도 창바이(長白)산이라 달리 부르며 늘 넘보고 있다. 이미 백두산 천지는 1962년 북한과 중국이 ‘조중변계조약’을 맺어 호수가 양분된 상태다. 자연재해 대비라고는 하지만 화산 연구까지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그래서 왠지 께림칙하다.